[두둥실 열기구 체험] 바람에 몸 맡기고 느긋한 하늘산책

노을에 물비늘이 반짝거릴 무렵,낙조로 유명한 경남 사천 실안해안관광도로 옆 들판에서 높이 17m 직경 15m 5층 건물 크기의 거대한 풍선이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다. 사천우주항공엑스포 에어쇼 비행통제단장을 맡고 있는 진성길씨,해운대 열기구 조종사 전광일씨와 함께 탄 애드하나호. 30m 남짓 떠오른 열기구는 더 이상 올라가지 못했다. 지상과 연결된 줄 때문이다.

'구름 위의 산책'을 하고 싶었다. 게으른 산책자처럼 느릿느릿 바람에 몸을 맡겨 자유비행을 하고 싶었다. 바람에만 의지해 바다를 가르는 요트처럼 열기구로 하늘을 가르고 싶었다.

비행금지구역이 문제였다. 하늘에는 철책이 없었지만,비행금지구역이 많아 열기구를 제대로 띄울 만한 하늘이 없는 아이러니. 우리는 줄에 매달린 열기구를 타고 계류운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비행금지구역이라는 '하늘철책' 외에도 열기구 타기에는 자연의 도움이 있어야 했다.

아침부터 바람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오후로 접어들면서부터 바람은 드세게 불어왔다. 진 단장이 고개를 저었다.

"초속 4m 이상의 바람이 불면 열기구를 타기 어려워요. 해질 무렵이면 바람이 잦아들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요."

가슴 졸이기를 한참,신기하게 해거름이 되자 바람은 잦아들었다.

바람이 잦아들자 사람들의 손길이 바빠졌다. '레저스포츠'라기보다는 막노동에 가까운 작업이 진행됐다.

?font color=red>열기구?엔벨로프(envelope:풍선처럼 생긴 공기주머니),바스켓(가스 주입용 통을 매단 사람이 타는 공간),엔벨로프와 바스켓 사이의 버너 등으로 구성돼 있다. 분리된 세 부분을 일일이 연결하고 엔벨로프에 바람을 불어넣는 것도 온전히 수작업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비행기는 엔진만 걸고 올라가면 되는데,열기구는 사전 사후 작업이 만만찮은 중노동입니다. 요새 젊은이들은 잘 안 하려고 해요."

비행기 조종사 출신인 진 단장의 푸념이다.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오랜 소망을 처음으로 가능하게 했던 열기구. 열기구는 자연을 닮은 고전적인 구조에 비례해 인간의 땀을 요구하는 게다.

엔벨로프가 모양을 갖추자 드디어 송풍기로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들판에 납작하게 붙어있던 풍선이 점차 공처럼 부풀어 올랐다. 5분쯤 지났을까? '슈우욱….' 화들짝 놀랐다. 불기둥이 풍선을 향해 솟구쳤던 거다. 버너에서 솟구쳐 나온,2m는 넘을 법한 파랗고 노란 불기둥이었다. 그 불기둥에 데워진 풍선은 거대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연방 불기둥을 열기구 안으로 쏘아대자 바스켓이 지면에서 살짝 살짝 움직이더니 땅에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커다란 풍선 안에 들어 있는 공기를 버너로 데우면 풍선 안팎의 온도 차이로 인해 열기구가 두둥실 떠오르는 원리다.

잽싸게 바스켓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내,질질 끌려가던 열기구가 가뿐히 떠올랐다. 사실 떠오르는 줄도 모를 뻔했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땅과 멀어지는 걸 확인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처음 하늘을 날았던 사람이 느꼈던 기분이 이랬을까?

불기둥으로 데우면 열기구는 올라가고 버너를 틀지 않으면 내려간다. 사실 조종간도 없는 열기구는 버너를 얼마나 자주 트는가 하는 것 말고는 조종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나머지는 하늘이 알아서 할 뿐이다.

?font color=red>열기구【?내려다 본 풍경은 예뻤다. 저 멀리 석양이 긴 꼬리를 감춘 섬은 땅에서 보았을 땐 길쭉한 단면에 불과했지만 열기구를 타고 공중에서 보니 그 입체감이 도드라졌다. 죽방렴으로 빨려들어가는 바닷물도 그 입체감의 폭을 넓혔다. 길다란 낙조의 띠가 수평선 근처에서 어른거렸다. 실안해변의 낙조풍경을 10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더 올라갔다면 더욱 장관이었을것이다. 열기구 안쪽을 올려다보면 거대한 성당의 돔 안쪽에 선 기분이다.

아래에선 구경 나온 동네 꼬마들이 함성을 질러댔다.

얼마나 오래 떠 있었을까? 갑자기 바람이 거세졌다. 계류운행이라 밑에서 잡고 있는 줄 때문에 열기구가 빙글빙글 돌았다. 균형을 잃으면 어쩌지? 이대로 떨어지는 건 아닐까?

"억지로 잡아매니 흔들리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편안하게 날아갑니다."

진 단장도 계류운행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착륙하기로 했다.

이런! 착륙하고 난 뒤에도 바람을 빼고,일일이 분리하고,1t짜리 화물차에 열기구를 싣는 작업에 이르기까지 또 한 차례 힘든 노동이 보태졌다. 사위는 이미 깜깜했다.

글=이상헌기자 ttong@busanilbo.com

사진=강선배기자 ksun@, 함재호 사진작가 제공